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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Dear 헤나 (52)
달과 나
어릴때 할머니 댁에서는 고양이들이 드나들수 있도록 마루문을 주먹 너비만큼 열어두곤 했다. 겨울이 되면 고양이들은 할머니나 아버지 발에 몸을 부비며 따끈한 아랫목을 찾아 들어왔고 한창 뜨개질하느라 바쁘신 할머니 무릎에서 졸거나 아직 어렸던 나와 놀아주다가 추운밤엔 그대로 자고 가기도 했지만 어느 순간이 되면 반드시 나갈 길을 찾았다. 지붕 위를 자유롭게 쏘다니다가 들르는 옥상 위에 작은 텃밭은 그들이 좋아하는 화장실이 되어 비료를 얻었고 (할머니는 부추를 뜯어먹는다며 가끔 화를 내셨지만) 아슬아슬한 담장을 우아하게 걷는 묘기를 보인다거나 짹짹되는 새앙쥐를 여유롭게 가지고 논다거나 수건을 널어두는 따뜻한 방으로 연결된 창문을 열고 들어와 식빵 굽는 자세로 앉아있는 채로 자주 발견되었다. 현관 앞에 내어주는 ..
헤나를 아프게 한적은 세번 정도 있는데 중성화 수술했을때 편한자리로 옮겨 주려고 들다가, 회전의자 바퀴에 꼬리털이 잠깐 끼어서, 엊그제 책상에 널부러진거 데려오려다 침대틈에 발가락이 끼어서 꺙 소리지르고 원망스런 눈빛으로 도망간다. 너무 미안해서 미안미안, 미안해라고 가까이가서 사과를 하면 헤나는 곧 마음을 풀고 부드럽게 고르랑 거리면서 콧등을 갖다댄다. 그정도는 괜찮아 라고 하는듯이 어른스럽고 배려할줄 알고 남을 보살피고 (그 남으로부터 사시사철 배척당하더라도=날라) 유연한 적응력과 늙지않는 호기심을 갖추고 섬세하면서도 예민하지 않은점, 배울게 얼마나 많은지.
주말 낮의 헤나를 보면 평소 나를 출근시키고 어떤 하루를 보내고 있나 대충 알수있다 = 침대 밑 서랍 속에서 잠 = 햇살맞으며 창가에서 잠 = 전용 소파에서 잠
모르는 사람은 헤나를 보고 너무 조용하다고 한다. 표정이 없다고 한다. 애교가 없다고 한다.
장난감 있는데로 가면서 돌아보며 이제 놀아줄 때가 되었다고 조르는 목소리, 그러다 푸딩을 발견하고 이번엔 푸딩을 달라고 조르는 소리 헤나라고 부르는 내 말에 대답하는 (야옹이 아니라 "으응?"이라고 한다) 소리나 재차 부르면 왜부르냐니까 하고 사람이랑 똑같은 억양으로 대답하는 소리. 쓰다듬어 달라는 눈빛. 차가운 코로 킁킁거리다가 엉덩이를 만져도돼 라고 들이밀거나, 사랑한다고 사랑한다고 말하는 눈키스 너의 시간과 나의 시간이 같으면 좋겠다 헤나
나른나른한게 고양이라는건 알지만, 돌아온 내게 와아옹 말하면서 하품하진 말아줄래?
정리하다 보니 퇴근이 조금 늦었다. 현관을 열었더니 후끈한 공기가 밀려들었다. 아, 감기때문에 어젯밤 창문은 전부 닫고 난방을 켜두었는데 아침에 출근할 때 창문을 다시 연다는걸 깜빡했다. 여느 때처럼 헤나는 버선발로 달려나온다. 밥그릇은 비어있고 물그릇은 증발해서 바싹 말라있다. 헤나는 노르웨이의 고양이라 속털까지 촘촘해서 눈밭에 내려놓아도 추워하지 않는다. 대신 그만큼 더위를 타서 여름 내 에어컨을 틀어도 해가 들어 가열되는 낮이면 화장실이나 옷장 속에 시원한 곳을 찾아 들어가 있곤 했다. 환기도 안돼는 후덥지근한 이곳에서 밥도 없고 물도 없이 열두시간도 넘게 홀로 있었을걸 생각하니 울컥했다. 안쓰러운 눈길로 가까이 가니 헤나는 언제나처럼 자그마한 코를 내 입술에 갖다댄다. 그런 걸로 탓하지 않는다는 ..
헤나가 추락했다. 2m 가까이 되는 찬장에서 위에 장난감을 한손으로 건들다가 (어떻게 그리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뒷발을 헛디뎠고 그대로 주르륵 떨어졌다. 어딘가의 그림에서 (어릴때 본 과학 앨범일지도 모른다) 고양이를 거꾸로 떨어뜨리면 참 폼나게 돌아서 네발로 착지하던데 헤나는 물그릇 위로 그대로 철푸덕 사료통과 헤나의 털은 푹 적고 사방이 물바다가 되었다. 사실 좀전에 동물 포비아를 극복해 보기로 한 유진이가 헤나를 처음 만났는데 찬장 앞에 좁은 틈이나 의자 팔걸이로 걸어가는 모습을 보며 고양이의 평형 감각에 감탄하는거다. 난 뿌듯했지만 곧 솔직해지기로 하고 헤나는 그다지 그런 능력이 뛰어난 편은 아니라고 사실대로 밝혔다. 그러자 증명하듯이 역대 최고 높이와 자세로 슬랩스틱을 보여 주는군. 꽤나 요란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