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과 나

주말의 기록 - 겨울, 눈 본문

소곤소곤 일상

주말의 기록 - 겨울, 눈

디아나§ 2020. 1. 19. 10:08

I.

미용실 예약시간까지 애매하게 시간이 남아서, 편의점에서 간단히 점심을 먹고 가기로 했다. 제대로된 먹을게 있겠어 하고 들어갔는데 오랜만에 삼각김밥이랑, 컵라면이랑, 크래미랑 사서 나눠먹으니 어릴때 생각이 나서 생각보다 좋았다. 시간이 조금 남아서 편의점표 커피를 마시려다가 머신 옆에 Swissmiss 핫초코가 꽂혀있길래 뜨거운물을 부어서 나눠먹으며 동네를 한바퀴 돌고 미용실로 들어갔다. 이게 지난주.

II.

그리고 이번주. 기념일에 받은 쿠폰들이 쌓여서 스타벅스를 가야지가야지 했는데 계속 못가다가 오늘은 작정하고 나왔다. 걸어서 10분 정도 거리에 스타벅스 DT점이 있는데 주차도 서너대 정도는 가능해서 차를 가져올 수도 있지만 오늘은 산책겸 걸어서 왔다. 오면서 하얀 알갱이가 한올씩 날려서 눈인지 아리송했는데 스벅에서 아침거리랑 커피랑 주문해서 자리에 앉자마자 펑펑 쏟아진다. 올해 쌓인눈은 1월 1일 아침에 잠깐 보고 끝인가 했는데 순식간에 쌓여버렸다.

사실은, 너무 안추운 올 겨울을 보내면서 북극곰을 걱정하다가 길에서 겨울을 날 냥이들을 생각하며 마음을 좀 달래고 있었는데 눈이 이렇게 오는걸 보니 좋기도 한데 복잡하다. 어제는 강남구청역에서 엄마 집까지 걸어가다가 부시럭 대서 수풀을 봤는데 눈이 아주 까맣고 동그란, 턱시도 옷을 입은 야옹이와 눈을 마주쳤다. 털 상태나 마주쳤을때 놀라지 않는걸로 봐서는 유기냥이 같은데 비닐봉지를 뒤지는게 자꾸만 눈에 밟혀서 결국 한참을 돌아가서 동물병원에서 수분이 많이든 캔을 샀다. 이런 때를 대비해서 간식을 좀 들고다니려고 하는데 쉽지 않다. 서둘러 다시 그자리로 왔는데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북극곰과 길냥이와 인간. 공존할 현실은 왜 어려운걸까.

사실은, 써내려가다보니 저기까지 닿은거고 커피가 앞에 있고 겨울의 스벅에 창밖 안예쁜 풍경들에 눈이 입혀지는 지금 이 시간이 좋아서 쓰기 시작한거다. 아, 눈이 그쳤다. 나이가 들어가면 경험한 것도 걱정할 것도 행복할(다시 말하면 감사할-기독교적인 단어라 좋아하지는 않지만) 것도 많아진다. 눈 하나에 불러들이는 감정들은 마냥 설렜던 어릴때의 단색과는 다른 여러가지가 겹쳐진 미묘한 색이지만 꼭 나쁘지많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