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과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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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취향

Fragrance - philosophy

디아나§ 2014. 10. 5. 19:50

 

  여자들의 보편적인 쇼핑 리스트 중에서 (옷, 구두, 메이크업-기초,색조,클렌징, 가방, 네일, 헤어, 란제리) 액수로 비교하기는 어렵겠지만, 나의 경우 첫눈에 마음에 들었을때 가장 고민없이 지갑을 여는 것은 향수다. 물론 크리드 향수는 내 마음을 사로잡고도 멀리 있을 뿐이고 향수 쇼핑을 그렇게 자주하는 편도 아니지만, 내 후각의 취향과 그를 통해 형상화되는 이미지를 향한 욕구를 나는 매우 존중한다. 어쨌거나 프루스트의 긴 이야기는 마들렌을 통해 (미각보단 후각이 아닐까) 시작되고 후각이란 개념 자체가 낭만적이고 싱그러우며 (신경 퇴행성 질환인 파킨슨 환자들의 가장 초기 징후는 anosomia 이다) 이 무엇이든 해낼 것 같은 디지털 시대가 아직 정복하지 못한 영역이니까.

 

  오래 전부터 데일리로 가운을 입고도 쓰기에 부담스럽지 않을 향수를 찾고 있었는데 이게 쉽지가 않은게, 나는 기본적으로 여성스러운 것을 좋아하지만 가운을 입었을 때는 화장도 치마도 늘어뜨린 긴머리도 내키지 않으며 그렇다고 가뜩이나 차가운 내 이미지를 강조할만한 중성적인 향도 싫고 무엇보다 사람을 가까이서 진찰하거나 접할때 향이 먼저 다가오는 점이 상당히 부담스러웠던 경험이 몇차례 있기 때문이다. 적극적으로 찾아 나서지는 않아도 은연중에 고민은 계속 하고 있었는데 이번에 드디어 몇달 전부터 맘에 든, 친구가 뿌린 향수가 어디에서 나온건지를 알아냈다. 매장을 찾아내고 시향을 하러 출발, grace 라는 이름을 가진 네 가지 향을 모두 맡아보고 내가 찾던 이미지에 가까운 두개로 고민을 했는데 결국 두 병 모두 사버렸다. pure grace 는 살갗의 냄새란 느낌이어서 먼저 골랐고, amazing grace 는 첫향이 grapefruit 이라는 점과, 무엇보다 향수 소개글에 쓰여진 글귀가 맘에 들어서 친구랑 겹치는데도 살수밖에 없었다. amazing grace 가 조금더 여성스러운 느낌이라 출근보다는 외출할 때 (또는 외출하고 싶은데 당직인 날에) 조금더 쓸것 같긴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