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화되는 기억, 그렇지 못한 기억

디아나§ 2023. 9. 25. 13:38

  어린시절에 멀리가는 여행에 대해서 아이가 기억을 하나도 못하니까 별로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물론 긴 비행시간과 경비, 엄마아빠의 체력 등 효용을 따져봐야하는 것은 맞지만 그것과 별개로 나는 감각의 기억은 어딘가에 저장이 된다고 생각한다. 언어화된 학습이 거의 없는 시기기 때문에 감각의 경험이 development에 영향을 주는 전부일테니 더욱 중요한게 아닐까. 

 #. 논외로, 많은 육아서를 보지 않았지만 아기를 낳고 가장 충격이었던 내용은 아기에게 중요한건 부드럽고 따뜻한 엄마(혹은 아빠)의 손길과 목소리라는 것이었다. 시력도 아직 발달하기 전이라 눈도 보이지않고 혼자 손도 마음대로 못움직이는 꼬물이에게 중요한건 들려오는 엄마의 목소리 톤, 손길의 부드러움, 냄새가 전부여서 그것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거다. 기저귀를 갈 때 혹시라도 잠을 못잔 엄마의 짜증스런 손길이나 누군가와의 다툼, 신경질적인 목소리 이런 것들이 얼마나 치명적일 수 있는지 - 이또한 기억하지 못하겠지만 중요한 것이다! - 라는 부분에 정말 놀랐다. 

 그래서 너와 함께한 첫번째 피카소 전시도, 에드워드 호퍼전도 마티스 전도 의미가 있었다. 

 프뢰벨에서 나눠준 작은 그림 도화들 중에 유독 피카소를 뜯어내는 너가 신기해서 (우연일수도 있지만) 혼자서 아기띠를 하고 피카소를 보러갔었다. 

 내가 좋아하는 서울시립미술관에서 내가 좋아하는 에드워드 호퍼전이 열리길래 예매를 하고 -이게 율율에게 첫 전시였다 - 그림 한점밖에 못보고 끝날수 있다는 각오를 하고 왔었는데 꽤나 훌륭하게 20분간 관람을 마쳤다. 어른들에겐 짧은 시간이어서 열심히 보고있는 관람객들을 슉슉 지나쳐 나왔지만 울지도 않고, 심지어 몇가지 작품은 마음에 드는듯 소리를 내며 관람한 너에게 박수를. 

 마티스 전은 색채가 아름다와서 언젠가 함께 가고싶은 니스를 떠올리며 찾아갔었다. 건대 쪽 영화관 꼭대기에 다락방처럼 자그마하게 전시를 열고 있었지만 아기자기해서 꽤 즐겁게 보고 돌아왔다. 

 그리고 너의 첫바다.. ! 모래의 감촉과 파도소리와 바닷가의 내음을 느끼게 해주고 싶었는데 잠깐 시간이 있었다. 늦여름의 바닷가 모래사장 위에 이제 막 걸음마를 뗀 너의 작은 발을 올렸을 때, 내가 잡아주자 아장아장 발자국을 남겼을 때, 여행이 얼마나 피로했든 나는 너무 기뻤다. 

 순전한 내 이기심과 기쁨이다. 너를 낳은것도 너를 데리고 내가 좋아하는 장소들을 가는 것도. 그래도 내가 책임지는 시간 동안은 행복해야 너도 행복하니까 함께 소중한 시간을 채워가길. 이 감각의 경험들이 반짝이는 순간들이 너의 parietal lobe의 주름 어딘가에라도 언어화 되지 않은채로 소중하게 기록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