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비된 램프
왜 어릴때 오헨리를 많이 읽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몇번이나 그의 단편 <크리스마스의 선물> 을 읽으며 델라의 폭포수 같이 흐르는 머리 빛깔과 거기에 어울릴 녹색 빗, 그녀의 선물을 본 짐의 표정을 상상하곤 했다. 읽고나면 따뜻해지는 이 단편도 좋아했지만 < 준비된 램프> 도 좋아했다. 수우는 백화점에서 일하는데, 부유층이 많이 오다보니 허영에 물들기 쉬운 분위기에서도 자신의 분수를 벗어나지 않는 선을 지켜나간다. 오동통한 하얀 팔이 매력인 그녀의 친구는 세탁소에서 일하는게 훨씬 페이가 좋다고 꼬시지만, 수우는 몇달러 안들여 직접 만든 옷맵시나 귀부인에게 배우는 걸음걸이를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사슴을 사냥하는 아르테미스처럼 (이표현이 나왔었지 아마) 남자들을 눈여겨본다. 몇번이나 화살을 겨누지만 결국 백만장자와 결혼하는 것은 그녀의 친구고 공원 앞길에서 울음을 터뜨리는 것도 그녀의 친구다. 댄, 그는 이제 나의 댄이야. 하고 수우는 뺨이 발그레해져 말한다.
구약성서는 내게 해외판 전래동화나 마찬가지였다. 어릴때 성경을 그림책으로 펴낸 시리즈가 있었는데 보고 있으면 어른들이 착한 아이구나 라고 했지만 난 그냥 재밌어서 또봤다. 준비된 램프란, 친구의 결혼식에 초대된 슬기로운 처녀들의 이야기에서 나온다. 결혼식 피로연을 기다리는 중에 날이 저물자 열명의 처녀는 (당황하지 않고!) 준비한 램프를 꺼내는데, 신랑은 늦도록 오질않고 기름이 떨어져 불빛은 희미해진다. 이때 다섯명의 슬기로운 처녀들은 더 준비해온 기름을 램프에 붓지만 나머지 다섯명은 준비해오지 않아 기름을 사러 슈퍼에 부리나케 뛰어간다. 진흙이 튀도록 뛰어갔다오니 신랑이 도착해 잔치는 열리고 문이 잠겨 그들은 들어가지 못했다는 이야기. 어릴때도 한 생각인데 램프를 준비한거면 이미 충분히 훌륭한데 합격주면 안돼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