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곤소곤 일상

enthusiasm

디아나§ 2015. 1. 27. 22:51

 

Nothing's gonna change my world

정말 좋아하는, 비틀즈의 Across the universe 에서 반복되는 가사.

 

 

그 무엇도 나를 막을 수 없다.

내리 누를것 같던 숨막히는 하얀 건물들도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 처럼 stereotype 대로 깎아내려는 좁은 집단도 매트릭스처럼 짜맞춘 시스템 속에서 나는 너덜너덜해지더라도 화학적 변화를 일으키지는 않았다. = irreversible 하지 않다.

 -> 중요한 것은 나를 위협했던 그 어떤 존재도 자체로서 악한 것은 없다는 것이다.

     착한 사람들과 좋은 목적은 가진 집단, 효율성이 좋은 시스템 - 도 어떤 위치에 놓여 어떤 권력을 가지게 되느냐에 따라 잔인함으로 작용할 수 있다.

 

나는 무엇을 소모해서라도 (더 과격히 말하면 무엇을 잡아먹고서라도) 살아남고, 틈바구니에서 겨우 숨쉬며 불안속에 저리다가도, 잘 순응한 것처럼 보여 틈이 보이는 그 순간 바로 나로 돌아오고 가장 위험하고 나쁘고 매력적인 생각을 해나간다.  내 안에는 언제나 싱클레어가 말했던 주말마다 말끔한 정장을 하고 향하는 교회의 경건한 세계와 하녀가 음란한 대화를 나누고 닭목을 비트는 부엌의 세계가 공존한다. 선도 악도 아닌, 무어라 규정지을수 없는 그것에 대한 동경, 그건 나의 기저 질환처럼 가장 깊은 곳에서 움틀댄다. 이것과 대외 관계 사이에 내숭, 숨죽임, 여성스러움에 대한 집착은 상처받기도 피곤한 이 사회에 살아남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혹은 너무 뻔한 논리를 비웃고 싶은 약간의 편법이거나.

 

이것은 내가 유전자의 본능에 끌려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어딘가에 정착한 사회적으로 '올바른 존재'가 되어도 계속될 욕망임을 알았다. 삶에서 실현시키지 못한다면 캔버스에서, 여행에서, 작가와 artist 에 대한 열정에서, 글에서, 단어에서, 아이에 대한 사랑에서 발산하게 될거다. 이 종교도 신념도 가치관도 아닌 무언가가 내안에서 사라지는 순간, 나는 죽는다. 언제나 내가 우울증에 걸리던 시기는 저것이 위협받던 시기였다.